우측의 사람은 등급 을종(乙種)으로서 원종공신녹권 양급(良級)이니 기특하도다. 이런 일들이여 홍무(洪武) 二十五年(서기一三九二년) 十월 일에 도평의사사가 안으로 아뢰고 홍무二十五년十월 일에 도승지 안경공(安景公)은 그 다음으로 알게 되어 왕의 뜻을 말로 전하노라. 『의흥친군위험절제사 정윤수(鄭允壽)와 정주도호부사 황보개(皇甫蓋)등 二백十三人은 또한 안팎으로 애씀이 여러 해로서 내가 많이 흉악배의 결당과 음모로서 불측한 일이 생김에 이르러 내가 그대들의 계책에 쫓아 흉악배를 베이게 되었으니 그 공로는 마땅히 상 줄만 하니 공신의 칭호와 포상을 유사(有司) 는 거행함이 좋겠다』고 하시므로 하교(下敎)와 갈이하여 이로서 등급이 있게 되였고 왕의 뜻으로서 乙과 良으로 하게 되었는바 박계수사향사가 출납하여 마치었음을 아뢰다.
홍무 二十六년 十二월 일에 도평의사사가 안에 아뢰고 홍무 二十六년 七월 二十二일에 도승지 이직(李稷)이 다음으로 아뢰어 왕의 뜻을 입으로 전하기를 『남양백 영통(永通)과 영삼사사 종원(宗原)등 一백二十七人은 또한 신우가 자리를 도둑질하여 난리가 극할 때로부터 모든 안위(安危)를 나에게 주의해 주어서 덕을 알려서 오늘이 있게 하였으니 공이 또한 적지 않으니 포상을 유사(有司)가 거행함이 좋겠다』고 하시므로 가르침과 같이 준행하노라. 홍무 二十六년(서기一三九三) 七월 二十七일에 좌승지 이근(李懃)이 다음을 알리어 왕의 뜻을 말로 전하기를 『공로를 기록하고 상을 줌은 옛부터 법에 있나니 이제 창업의 초기를 맞아 이에 마땅히 그 공로자를 드노니 판개성부사 인렬(仁烈) 기종(器宗)은 앞을 내다보는 선견지명이 출장입상할 때부터 지식으로 나에게 주의시켜 내가 얻은 공이 많았고 판내시사사신 신(辛)은 내가 처음으로 등극할 때 겨우 준비가 없을 때 역대의 전조성시(前朝盛時)의 의전에 비추어 적절히 조처하여 내조를 하였으니 그 공이 가히 기록할 만하고 同판내시사 윤상(尹祥)과 이광지(李匡知) 내시부사 안거(安居)등은 비록 이에는 미치지 못하나 도움이 많았으니 또한 기록해 줄 것이요 삼사좌복야 중화(仲和)와 前문하찬성사 성석린(成石璘)등 八인은 또한 신우왕의 실정(失政)때부터 안위(安危)를 나에게 주의시켜 주었으니 포상을 유사가 거행함이 좋겠다』하시므로 下敎와 같이 하노라. 홍무 二十六년(서기一三九三) 七월 二十九일에 좌승지 이근(李懃)이 다음으로 왕의 뜻을 말로서 전하기를 『공로를 기록하고 상을 줌은 옛부터 있는 법전이어니 창업의 초기를 당하여 이에 마땅히 먼저 그 공로자를 포상하는바 전 판삼사사 인철(仁哲)과 전 판개성부사 한천(韓蕆)등 六十一人은 또한 신우왕의 실정(失政)때부터 안위를 모두 나에게 주의시켰고 덕을 베풀게 하여 오늘이 있게 하였으니 공이 또한 적지 않고 검교밀직복사 방택(方澤)과 검교중추원부사 을준(乙後)등 十一인은 또한 내가 즉위할 때에 일관(日官)으로서 분명하게 좋은 날짜(天時)를 가려서 대위에 오르게 권하였으니 또한 그 공이 상줄 만하니 유사는 포상을 거행하라 하시므로 이와 같이 실행하노라』 홍무 二十六년(서기一三九一) 十월 二十九일에 좌승지 李는 다음으로 알리어 점수를 메기고 조례를 나누어 이르노니『전 해주목사 최윤수(崔允壽)와 첨절제사 장일성(張日成) 전 典書 오명리(吳明理) 김유서(金惟叙) 철원부사 장원경(張原卿) 나주목사 김윤진(金允珍) 前전서 서귀룡(徐貴龍) 이지우(李知雨) 대장군 한규(韓珪) 전典書 오백성(吳伯成) 이종무(李宗武) 전봉상경 이점(李霑) 중낭장 연수(延守) 전판사 박인수(朴仁壽) 김윤립(金允立) 봉상경 김정경(金鼎卿) 상장군 정을방(鄭乙邦) 전감 김질(金秩) 군기감 이보일(李寶釰) 소경 권희달(權希達) 남양부사 손계종(孫季宗) 예조의낭 임중선(任中善) 전소감 임득방(任得邦) 전감 김연(金延) 전경 김승(金升) 장군 정구(鄭龜) 도응 이사근(李思謹) 이계문(李季文) 중낭장 김열(金悅) 전낭장 정제(鄭濟) 삼군부복진무 연천우(延天雨) 전도관찰사 강은(姜隱) 전밀직부사 유준(柳濬) 중추원사 인윤(印潤) 전도호부사 이사위(李士渭) 이전(李專) 검교중추원부사 최융(崔融) 좌도도관찰사 최원(崔遠) 상의중추원사 유원지(柳原之) 선공감 김봉덕(金鳳德) 조사알 이덕시(李德時) 선공감 강도(康圖) 사농경 송언룡(宋彦龍) 지보주사 신극례(辛克禮) 사재감 정비(鄭庇) 전통주자 이양생(李陽生) 연산부사 정강(鄭崗) 대장군 신효창(辛孝昌) 경 최사위(崔士威) 전중승 경습(慶習) 소경 강현(姜現) 소감 양홍달(楊弘達) 전장군 이발(李發) 강유신(姜有信) 김우(金宇) 도호장군 진여안(陳汝安) 전장군 김구상(金九祥) 사헌중승 유관(柳觀) 순창군사 김단(金端) 전군기윤 유길인(兪吉仁) 선공소감 이중배(李中培) 삼사자의 박순(朴淳) 우사알 최림(崔霖) 좌사약 황재중(黃在中) 내알자 심서(沈舒) 한간(韓幹) 좌승지 김중귀(金重貴) 중낭장 정보현(鄭普賢) 전중낭장 탁사준(卓士俊) 황철(黃哲) 전시승 이림(李霖) 개성판관 윤개(尹愷) 봉상박사 김과(金料) 소감 한우(韓佑) 좌사약 강경선(姜敬善) 전서령 박자량(朴子良) 낭장 박유청(朴有清) 전낭장 조민경(曺閔敬) 전삼사사 강인우(姜仁佑) 상당부원군 한천(韓蕆) 전판사 이천우(李天佑) 공조전서 당성(唐誠) 전부사 고설(高薛) 판사 이미충(李美忠) 대장군 이화영(李和英) 전판사 이울(李蔚) 의랑 신유정(辛有定) 사농주부 신극경(辛克敬) 검교 이동(李同) 함산군(咸山君) 인원보(印元寶) 김도문(金到門) 김영기(金永奇) 정주목사 이원(李原) 홍주목사 박휘(朴暉) 판사 강구(姜具) 엄인평(嚴仁平) 이룡(李龍) 오원우(吳原佑) 이언(李彦) 전전서 박헌(朴軒) 판사 주자음(朱者音) 보화(甫花) 전감 김선(金善) 전좌윤 안종일(安宗釰) 전판사 안송언(安松彦) 전감 지백안(池伯顏) 장군 김중보(金重寶) 전부령 김사온(金思溫) 전부정 문월자(文月者) 김인간(金仁幹) 문천봉(文天奉) 전부령 김성(金成) 심지백(沈之伯) 이광(李光) 전총랑 김광대(金光大) 백원봉(白原奉) 이필(李必) 양헌(梁憲) 문량(文良) 전호군 김귀보(金貴寶) 전부정 이광전(李光前) 총낭 한노개(韓奴介) 전감 노인철(魯仁哲) 검교내시 방언(方彦) 전감 신우(辛祐) 김계란(金啓蘭) 전령 김오내(金吾乃) 전부정 강거신(姜居信) 전중낭장군 언중(彦中) 전정 장예경(張藝冏) 전군기 윤조화(尹趙和) 전정 김승계(金承啓) 김연우(金延佑) 민성부(閔誠富) 중낭장 원인여(原仁呂) 전중낭장 주인길(周仁吉) 임하우(林夏雨) 이주(李柱) 이영부(李英富) 문원(文原) 김보개(金甫介) 김택(金澤) 전낭장 김룡(金龍) 송문(宋文) 전소감 김봉(金奉) 전판사 김경(金景) 김수(金守) 전령 서용기(徐用奇) 전감 이원백(李原伯) 김달(金達) 원천(原天) 중낭장 박양정(朴陽鼎) 부개(夫介) 낭장 서양비(徐良庇) 전낭장 백인기(白仁奇) 전감 서원기(徐原奇) 전판사 오원우(吳原佑) 전전서 한룡각(韓龍角) 전령 김여생(金麗生) 강위(姜渭) 조심(趙心) 전판사 김기(金己) 전낭관 황충언(黃忠彦) 전부정 서귀수(徐歸守) 최원우(崔原佑) 김부개(金夫介) 노현수(魯玄守) 전호군 김영부(金英富) 중낭장 김기(金淇) 엄우만(嚴禹萬) 위신(魏臣) 전충낭 이윤량(李允亮) 중낭장 고천련(高天連) 박영수(朴英守) 이만성(李萬誠) 김승정(金升鼎) 이우(李雨) 변원용(邊原用) 박자수(朴資守) 안흡(安洽) 김을화(金乙和) 박희무(朴希茂) 전흥우(田興雨) 김봉명(金奉命) 별장 이흥수(李興守) 송윤제(宋允齊) 전부정 김두언(金豆彦) 전중낭장 윤덕해(尹德海) 전령 김시(金時) 고가물(高加勿) 낭장 주원의(周原義) 중낭장 김사범(金思範) 용사경(龍似鏡) 전중낭장 한정(韓定) 전산원 강천명(姜天命) 별장 이관생(李觀生) 전정 류성언(劉誠彦) 장용한(張用漢) 박경기(朴景奇) 전부정 강안도(姜安道) 김철(金哲) 임훤(林萱) 이영(李英) 엄백화(嚴白華) 낭장 유언생(劉彦生) 전부령 류하(劉河) 고령 이사익(李思益) 낭장 김가신(金可信) 이득생(李得生) 김하생(金河生) 전부령 김천기(金天奇) 전제학 허시(許時) 우도관찰사 김희선(金希先) 전전서 문계안(文係案) 전목사 배구(裴矩) 대장군 홍빈(洪斌) 의랑 조겸(趙謙) 전정 김보(金寶) 전부정 노성(盧成) 전소감 한가물(韓如勿) 김원지(金原之) 전중낭장 김세전(金世前) 밀직부사 장관(張寬) 판사 원덕(元德) 부사 박흥양(朴興揚)은 을(乙)등이요 대장군 이화영(李和英)등은 준례대로 밭 十五결로서 각각 상급하라 하시매 한결갈이 점 수를 메겨 주례를 나누어서 이 하교를 잘 처리했음을 아틔게 하였는바 이 사람들을 종은 원종공신이라 칭하라고 하교하시매 이로써 부모와 처에게 벼슬을 봉하고 자손에게는 음사(蔭仕)의 길이 후세에까지 누리게 하였다. 하교를 이에 처리하매 을(乙)종의 상은 양(良)급이니 준례대로 나누어 비석을 세워서 공훈을 기록하되 장관(掌官)은 출납을 하여 그 결과를 아뢰고 녹권을 보내줌이 좋겠다 하시므로 교지와 갈이 하매 이에 사적에 올리게 되노라. 홍무 二十八년(서기一三九五) 三월 七일에 우승지 익대개국공신 통정대부 경연참찬관 보문각직학사 지제교 지호조사 민여익(閔汝翼)은 왕의 뜻을 받들어 교시에 의하여 녹권을 이로부터 시행케 하노라. 홍무 二十八년(서기一三九五年 : 이태조四년) 윤九월 일에 녹사 권지 도평의녹사 전수의 부위 흥위위 우영산원 정(鄭)에게 알리고 녹사 권지 도평의녹사 전신호위보승별장 박(朴)과 판관 선교랑 각문통찬사인 양(楊)과 판관 통선랑 예조정랑 최(崔)와 부사 봉정대부 예조의랑 강(姜)과 부사봉정대부 호조의랑 박(朴)에게 알려서 익대개국공신 통훈대부 판교서감사직 집현전지서적원사겸예문관 춘추관 편수관 성(成)과 판사추충익대개국공신 가정대부상의중추원사 도평의사사 홍(洪)과 판사추충익대개국공신 가정대부상의중추원사 도평의사사 집현전학사 오(吳)와 이조좌랑 승의랑 고공좌랑 이(李)와 이조좌랑 승의랑 상서직장 윤(尹)과 이조정랑 통덕랑 고공정랑 류(柳)와 이조정랑 통덕랑 김(金)과 의랑봉정대부 세자좌필선지제교경예문관 춘추관 편수관 서(徐)와 의랑 봉정대부 이(李)와 지조사 인(印)과 전서 엄(嚴)과 겸전서 익대개국공신 통정대부 중추원사 좌승지 집현전학사 민(閔)을 시켜서 하게 하다.